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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해

창세기 2장 선악과의 의미, 신약의 십자가 사건과 비교

by πάροικος 2024.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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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와 십자가

인류의 타락의 시금석이 된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부에서는 선악과에 대해 다루고, 2부에서는 선악과와 예수님의 십자가를 비교하는 시갖을 가지려고 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타락의 의미를 깊이 들어가기 위한 준비 작업과 같은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등장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이하 '선악과')는 창조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성경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인류의 타락과 구속사, 자유 의지,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선악과를 금하신 이유, 선악과의 의미, 그리고 선악과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신학적 고찰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1. 선악과의 의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히브리어: עֵץ הַדַּעַת טוֹב וָרָע, "에츠 하다아트 토브 와라")는 문자 그대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한다’는 것이 단순히 지식이나 인지 능력의 확장과는 다른, 보다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과 악의 인식

나무는 단순히 선과 악의 개념을 아는 지식적인 의미 이상으로, ‘도덕적 자율성’을 상징합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지만 이렇습니다.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손종하지 않느냐를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여 자신이 신이 되려는 의지의 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순종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인간이 도덕적 기준을 스스로 세우는 대신, 하나님께 의존하며 순종하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악과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 즉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철저히 하나님 의존적 존재임을 타락 이후 죄악의 현상들을 보면 알게 됩니다. 인간이 갖게 된 경험적 지식은 최악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경험과 지식을 너머서 초월적 현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금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금하신 이유는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선택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만 그 자유가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

하나님은 인간을 자동으로 순종하도록 설계된 로봇처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주어졌으며, 이는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금하신 것은 바로 이 자유 의지의 실천을 위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거나, 따르지 않을 자유가 있었지만,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그들이 선악과 먹음으로 신이 되려는 욕구가 속임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순종할 자유와 순종하지 않을 자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뱀은 인간들에게 있는 신적 능력을 '없다'고 속임으로 인간을 파괴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의존성

선악과는 인간이 하나님께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임을 상징합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정하신 도덕적, 윤리적 질서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의미했습니다. 반대로, 선악과를 먹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는 행위였습니다.

 

도덕적 자율성의 위험성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금하신 것은 인간이 스스로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통제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인간이 선과 악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겠다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결국 선악과를 금하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참된 도덕적 자율성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3. 선악과가 없었다면 죄를 짓지 않았을까?

많은 이들이 질문하는 부분 중 하나는 "만약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아예 두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죄를 짓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하나님의 계획을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유 의지의 본질

만약 선악과가 없었다면, 인간은 자유 의지를 행사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선택의 기회가 없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존재가 아닌, 무의식적인 존재로 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유 의지는 선택의 가능성이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선악과가 없었다면, 인간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발적인 순종과 사랑을 보여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죄의 가능성은 필수적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을 때, 이는 죄를 지을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죄의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기를 원하지 않으셨지만, 인간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과 관계의 본질임을 아셨기 때문에, 죄의 가능성을 허용하셨습니다. 결국 선악과가 없었다면, 인간은 선택의 기회도, 죄의 가능성도 없이 제한된 존재로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선악과의 존재와 죄의 현실

선악과는 인간에게 시험의 도구로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악과는 인간이 하나님과 맺는 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선택하고 죄를 지었을 때, 이는 단순히 나무 열매 하나를 먹은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리고, 스스로가 도덕적 기준을 세우는 자리에 오르려는 반역이었습니다. 선악과를 통한 죄의 가능성은 인간이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의존성을 버리고 자율적으로 행동하게 된 결과였으며, 그로 인해 죽음과 죄의 현실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4. 신학적 고찰: 선악과와 구속사의 관계

선악과는 구속사 전체에서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지닙니다. 인간의 타락은 선악과를 통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인류는 죄와 죽음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속사의 핵심은 이 타락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다시 회복되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타락의 원인과 결과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된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인간은 죽음과 고통, 죄의 결과를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과 선악과의 회복

그러나 신학적으로 볼 때, 선악과를 통한 타락의 사건은 구속사에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통해 타락할 것을 아셨고, 이를 구속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번째 아담으로서, 첫 번째 아담이 실패했던 자리에서 순종하심으로 인류를 구속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서 바울은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선악과 사건에서 불순종했던 인간의 타락을 극복하는 구속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선택

선악과 사건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여 하나님을 거역했지만, 하나님은 그 선택을 통해 구속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그 타락조차도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선악과 사건은 인간의 실패와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가 함께 얽혀 있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5. 결론: 선악과가 주는 교훈

선악과는 성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지니며, 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유 의지와 선택

첫번째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고, 인간은 이를 통해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인간에게 있습니다. 선악과는 인간의 자유와 그 책임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선악과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의존적 관계에서 벗어나려고 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생명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도덕적 기준을 세우는 것은 파멸로 이어집니다.

 

구속사의 출발점

선악과를 통한 타락은 인류의 구속사에서 필연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을 통해 죄가 들어왔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그 죄는 극복되었고,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선악과는 단순한 나무 열매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 의지, 도덕적 자율성,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선악과는 인간이 넘지 말아야할 경계선과 같습니다. 양은 목자의 보호 아래, 목장 안에 있을 때 안전한 법입니다.

선악과와 십자가 사건의 비교

 

이제 두 번째 선악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선악과 사건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성경의 구속사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의 타락과 구속이라는 대주제를 중심으로 대비됩니다. 선악과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반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그 불순종으로 인해 들어온 죄를 극복하고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입니다. 두 사건을 비교하고 분석하면,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불순종과 순종의 대조

선악과 사건의 불순종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불순종의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창세기 2:16-17)고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이 명령을 어기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 불순종의 결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죽음과 고통, 저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

이에 반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그분의 십자가 사건에서 절정에 달했으며, 이는 아담의 불순종을 바로잡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핵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라고 기도하시며,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신학적 분석

아담의 불순종은 죄와 죽음을 가져왔지만, 예수님의 순종은 생명과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은 이를 명확히 말합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여기서 아담의 불순종과 예수님의 순종은 인류의 운명을 가르는 두 결정적 사건으로 대조됩니다.

 

2. 나무와 구속의 상징성

선악과 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나무는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인지, 아니면 자율적으로 선악을 판단하려고 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시험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나무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명령에 순종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선택을 할 것인지가 드러났습니다.

 

십자가 나무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도 상징적인 의미에서 ‘나무’로 불립니다. 사도행전 5장 30절은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은 선악과 나무에서 이루어진 불순종을 바로잡는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나무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지만, 예수님은 나무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인류의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첫인류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사망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인류를 십자가의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참으로 기묘한 비교이자 상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6장54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신학적 분석

선악과 나무와 십자가 나무는 각각 인간의 타락과 구속을 상징하는 두 나무입니다. 선악과 나무는 인간의 죄와 불순종을 초래한 장소인 반면, 십자가 나무는 죄를 사함받고 회복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구속을 제공하기 위해 나무의 상징을 사용하신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나무에서 범죄하였고, 예수님은 나무에서 그 범죄를 용서하셨습니다.

 

3. 죽음과 생명의 대조

 

선악과 사건 이후의 죽음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2:17). 인간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영적인 죽음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로 인해 영적 죽음과 함께 육체적 죽음도 현실로 들어왔습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불안과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으며(창세기 3:7),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영원한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영원한 생명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는 사건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그분의 죽음은 죄로 인한 죽음을 대속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분의 부활을 통해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가 다시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사건입니다.

 

신학적 분석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죽음은 영적인 단절과 육체적인 죽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그 죽음을 거꾸로 뒤집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명나무에 다시 접근할 수 있는 자들의 복을 언급하며, 그들이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처럼 죽음과 생명의 대조는 선악과 사건과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속사적으로 설명됩니다.

 

4. 죄의 시작과 죄의 해결

선악과 사건으로 인한 죄의 시작

선악과 사건은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죄의 시작점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죄를 초래했고, 그 결과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고 말합니다. 선악과 사건은 단순히 인간의 잘못된 선택을 넘어서, 죄의 본성을 전 인류에게 전달하는 기원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죄의 해결 / 생명의 시작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8절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었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으며, 이를 통해 죄의 사슬을 끊고 인간에게 새 생명과 의를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인류가 얻게 된 죄의 저주를 씻어내는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신학적 분석

아담의 죄로 시작된 인류의 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해결되었습니다. 선악과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스스로 죄의 주인이 된 사건이었고, 십자가 사건은 그 죄를 제거하고 인간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죄의 사망권세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구속사의 완성

선악과와 구속사의 시작

선악과 사건은 구속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지만(창세기 3:23),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다시 구원할 계획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창세기 3:15)을 통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구속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십자가와 구속사의 완성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구속사의 절정이며, 구원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전히 이루는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부터 계획하신 구속의 역사가 완성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서, 첫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승리를 거두셨고, 그 승리는 인류에게 새로운 생명과 회복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신학적 분석

선악과 사건에서 시작된 인간의 타락은 십자가 사건에서 구속을 통해 해결됩니다. 구속사는 아담의 죄로 시작되었고, 예수님의 순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셨던 에덴의 상태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등장하는 생명나무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인간이 다시 그 열매를 먹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결론

선악과 사건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성경의 구속사에서 필수적인 두 축을 형성합니다. 선악과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졌지만, 십자가를 통해 그 관계는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죄의 역사는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해결되었으며, 인간은 다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있는 존재로 회복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속의 여정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며, 십자가는 선악과 사건을 완전히 치유하는 구속사의 절정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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