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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상징

인내하시는 하나님

by πάροικος 2025.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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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참으심과 자비로 구속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성경신학적 고찰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즉각적으로 모든 것을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반복하여 증거합니다. 이 인내는 단지 참는 것 이상의 신적 덕목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유보하시고 죄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은혜의 모습입니다. 특히 보수적인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인내를 하나님의 자비, 긍휼, 오래 참으심, 그리고 구속적 목적과 연결지어 해석합니다. 본 글에서는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그 역사적·신학적 의미를 성경 전반을 통해 체계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인내: 개념과 신학적 정의

성경에서 ‘인내하신다’는 것은 단순히 분노를 억제하거나 기다린다는 개념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비와 언약의 신실함에서 비롯된 시간 속의 은혜입니다.

출애굽기 34:6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하나님 자신이 모세 앞에 나타나시며 하신 이 자기 계시는 하나님의 본질 중 하나로 ‘노하기를 더디하심’을 포함합니다. 여기서 ‘노하기를 더디함’(에렉 아팜)은 바로 ‘오래 참으심’으로 번역되며, 하나님의 인내를 대표하는 구약적 표현입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의 유예’

보수주의 교리는 하나님의 인내를 결코 약함이나 무능함으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심판을 유예하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선한 목적을 가진 유예’(Redemptive Forbearance)로 해석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함께 작용하는 신적 시간 안에서의 역사입니다.

구약에서의 인내하시는 하나님

구약에서 하나님은 죄 많은 백성을 향하여 끊임없이 참으시며, 반복된 불순종 가운데서도 오래 참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노아 시대의 인내

“그가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노아를 보호하시고…” (벧후 2:5)

노아 시대는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찼지만, 하나님은 방주를 짓는 수십 년의 시간을 통해 심판을 지체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는 이 기간이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이었음을 강조하며, 의인의 전파와 회개의 기회가 함께 제공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의 반복된 불순종

“그들은 광야에서 그를 시험하며… 여러 번 그를 격노하게 하였도다” (시 78:40~41)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불순종과 불평을 반복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즉시 진멸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인도하시고 양육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지도력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향하여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예레미야와 선지자 시대

예레미야 7:25~26에서 하나님은 “내 종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내가 단회적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통한 반복적 자비였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기회를 주셨습니다.

신약에서 드러난 인내의 성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인내를 가장 인격적이고 구속적으로 드러내신 분입니다. 그분의 사역 전체는 ‘참으심’과 ‘자비로 기다리심’의 결정체였습니다.

로마서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인자하심, 용납하심, 오래 참으심은 죄인을 회개로 이끄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유보하시는 목적이 단지 형벌을 늦추기 위함이 아니라, 회개라는 구속적 결말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신학적 원리를 나타냅니다.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인내는 종말을 지연시키는 형태로까지 나타납니다. 보수적 종말론에서는 이를 ‘회개 기회의 최대한의 확장’이라고 해석하며,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받을 자를 향한 극진한 배려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예수의 고난과 인내

예수님은 모욕과 고난 속에서도 입을 열지 않으셨고(벧전 2:23), 십자가 위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이는 하나님이 죄인을 어떻게 참으시는지를 인격적으로 보여주는 절정의 장면이며, 예수는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구현입니다.

성령을 통한 인내의 열매

하나님의 인내는 성도에게도 전수됩니다. 성령의 열매 중 하나는 ‘오래 참음’이며, 이는 하나님을 닮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성령께서 거하시는 자는 인내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훈련과 노력의 열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품이 내 안에 살아 움직이는 증거입니다.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의 인내를 반영하는 ‘거룩한 유사성’입니다.

골로새서 3:12~13

“극률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신자는 하나님의 인내를 입은 자로서, 공동체 안에서도 인내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그대로, 우리도 서로에게 행해야 하는 실천적 윤리입니다.

하나님의 인내와 심판의 관계

보수적 신학은 하나님의 인내가 결코 ‘심판의 유예’에 머물지 않으며, 반드시 종말적 심판으로 연결된다고 가르칩니다. 인내는 영원한 면죄부가 아니라, 회개를 향한 마지막 기회입니다.

로마서 9:22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오래 참으심으로 멸망받기로 준비된 그릇을 관용하시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심판의 불가피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공의를 완전히 실현하시기 위해 인내하시며, 회개하지 않는 자에겐 결국 심판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내는 은혜이지만, 그 은혜를 가볍게 여기면 그것은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

결론

인내하시는 하나님은 죄인을 향해 오래 참으시며, 구원의 기회를 넓히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속적 사랑의 표현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이 인내는 심판을 유보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이자, 회개로 초대하시는 은혜입니다. 보수적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인내를 결코 나약한 유예로 보지 않으며, 거룩한 목적과 궁극적 심판 사이의 은혜로운 시간으로 이해합니다. 성도는 이 인내를 경험할 뿐 아니라, 삶으로 실현하며, 세상 가운데 오래 참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야 합니다. 혹시 이 글이 조금 길고, 중간에 오타가 있어도, 인내하시는 하나님은 끝까지 함께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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