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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해

마태복음 23장 주요 주제와 해설 묵상

by πάροικος 202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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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과 진실 사이에서, 주님의 눈으로 본 경건의 본질

마태복음 23장은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강력한 책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장에서 일곱 번에 걸쳐 “화 있을진저”라는 경고를 반복하시며,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외식을 신랄하게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그 책망의 목적은 단지 심판이 아니라, 참된 회개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이 담긴 외침입니다. 이 장을 통해 우리는 참된 경건이란 무엇이며,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경건의 외형이 아닌 본질을 추구하라

예수님은 먼저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23:2-3). 이 말씀은 그들이 가르치는 율법의 내용 자체는 존중할 만하나, 그들의 삶의 방식은 본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표현은 권위 있는 교사로서의 자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본래 의도를 왜곡하고, 스스로는 지키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었습니다(23:4).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모든 일을 하며, 옷술을 넓게 하고 옷단을 길게 하며, 잔치 자리의 윗자리를 좋아하고 사람에게 인사받기를 원했습니다(23:5-7).

이 장면은 경건이 외형으로 전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앙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참된 경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23:8). 이는 위계적 구조가 아닌, 형제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질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영적 권위는 계급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과 겸손한 섬김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하시며(23:11),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다시 정립하십니다.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이신다는 역설의 진리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먼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직분도, 가르침도, 모두가 섬김을 위한 자리입니다.

일곱 가지 화, 외식에 대한 강력한 경고

예수님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일곱 번 반복하여 “화 있을진저”라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화’(οὐαί, 우아이)는 단순한 분노가 아닌, 애통과 탄식이 담긴 경고입니다. 사랑하되 돌이키지 않는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슬픔이 담긴 단어입니다.

  1.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못 들어가게 하는도다”(23:13). 자신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남들까지 막는 모습은 말씀의 권위를 자신의 입장에 맞게 사용하며, 복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종교인의 모습입니다.
  2.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23:15). 외형적 개종은 만들어 내지만, 실제 하나님과의 관계는 없는 이들을 양산하는 위선적 선교를 비판하십니다.
  3. 맹세의 본질을 왜곡하는 자들에 대한 책망(23:16-22). 금으로 맹세하면 지키라 하고,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니어도 된다는 식의 편법은 신앙을 거래처럼 만들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키는 일입니다.
  4.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23:23). 형식에는 철저하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데는 관심이 없는 자들을 향한 책망입니다.
  5. “깨끗한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도다”(23:25). 외모는 단정하지만 마음은 부패한 이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신앙은 껍데기가 아니라 중심입니다.
  6.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은 아름답게 보이나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23:27). 가장 강력한 외식의 묘사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경건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영혼의 상태를 드러냅니다.
  7.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꾸미며, 우리가 있었더라면 그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 하면서, 실상은 그들을 죽인 자들의 자손이니라”(23:29-32). 과거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반복하면서도 스스로는 의롭다고 여기는 자기 기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이 책망은 오늘 교회 안에도 똑같이 유효합니다.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이들, 경건을 드러내는 직분자들일수록 더욱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은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며, 진실한 믿음과 겸손한 삶을 원하십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통곡: 거절당한 사랑의 외침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한 눈물의 고백을 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23:37).

이 말씀은 단순한 책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이 선지자를 거절하고, 말씀을 거절하며, 메시아마저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그 현실 앞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그 사랑은 수동적 사랑이 아닙니다. 포기하지 않고, 찾아오시고, 품으려 하시는 능동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결국 사람의 선택은 책임을 동반하며, 거절한 자에게는 그에 따른 심판이 따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23:38). 이는 성전 파괴의 예고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종교의 결과입니다. 껍데기만 남은 성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하리까지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리라”(23:39). 이는 재림의 날까지, 참된 회개 없이는 주님을 온전히 알 수 없음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결론: 진실한 신앙, 주님 앞에 바로 서는 삶

마태복음 23장은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을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려는 마음입니까? 외형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그 안에 사랑과 회개와 믿음이 없다면 주님은 그 신앙을 받지 않으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바리새적 경건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말씀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의와 긍휼과 믿음, 사랑과 섬김, 회개와 진실함. 이것이 주님께서 찾으시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그 열매 없는 신앙은 회칠한 무덤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겉을 닦지 말고 속을 씻으라. 말로만 찬양하지 말고 삶으로 순종하라. 그리고 내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려는 마음이 있는지를 점검하라.

예루살렘을 향한 주님의 눈물이 오늘 우리를 향한 눈물입니다. 그 사랑을 거절하지 말고,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그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진실하게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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