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기준과 부르심, 제자도의 본질을 묻다
마태복음 19장은 예수님의 유대 지역 사역으로의 전환을 알리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의 자격과 기준, 제자도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깊이 있게 가르쳐 주는 본문입니다. 특별히 결혼과 이혼, 어린아이와 하나님 나라, 그리고 부자 청년의 이야기 등을 통해 예수님은 당시 사회와 종교가 만들어 놓은 틀을 부수고, 복음이 요구하는 전적인 헌신과 순종을 요청하십니다. 이 장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세상의 기준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이며, 믿는 자로서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묵직하게 도전합니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본래적 뜻
예수님께서 유대로 내려가시자 바리새인들이 이혼 문제로 시험하려고 나아옵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든지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19:3) 이 질문은 단순한 윤리적 관심이 아니라, 당시 유대 사회에서 핫한 논쟁거리였으며, 예수님을 율법 해석의 갈등 속에 빠뜨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시며 창세기의 창조 질서를 인용하십니다. “창조하신 이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둘이 한 몸이 될지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19:4-6). 여기서 예수님은 결혼의 본질이 인간의 선택이나 계약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창조 질서의 일부임을 선언하십니다. 결혼은 생명의 연합이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맺어진 신성한 언약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신명기 24장의 말씀을 인용하며, “모세가 이혼증서를 주면 이혼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허락한 것이지 본래 그렇지 않다”고 하시며, 이혼에 대한 율법의 허용이 하나님의 본래 의도는 아님을 밝히십니다(19:8). 예수님은 간음의 경우 외에는 이혼이 정당하지 않으며, 이혼 후 재혼은 간음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19:9).
이 가르침은 당시 문화와 완전히 충돌하는 말씀이었으며, 제자들조차 “그렇다면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반응할 정도였습니다(19:10). 예수님은 독신 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택하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결혼이든 독신이든 하나님의 나라를 중심에 둔 삶의 방향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이 본문은 우리 시대에도 깊은 도전을 줍니다. 결혼이란 감정이나 환경에 따라 쉽게 끊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언약으로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동시에,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뜻 안에서 서로를 거룩하게 세우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로서 가족을 세워졌음을 이해하고 날마다 거룩한 나라를 세워가는 복된 성도들이 됩니다.
어린아이와 하나님 나라, 겸손한 믿음의 태도
이어지는 장면은 어린아이들이 예수께 가까이 오는 것을 제자들이 막는 사건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어린아이는 한 사람으로 존중받기보다, 아직 책임이나 권리가 없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19:14)고 하시며,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 합당하다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천국의 모델로 삼으신 이유는 단순히 순수하거나 사랑스러워서가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를 상징합니다. 스스로 의를 내세우거나 자격을 주장할 수 없는 자, 오직 은혜에 기대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며 자주 빠지는 오류 중 하나는, 오랜 신앙의 경력이나 교회에서의 역할이 내 자격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주님 앞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입니다. 겸손한 믿음, 그것이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부자 청년과 제자도의 본질, 따르는 길은 포기에서 시작된다
마태복음 19장 후반부는 잘 알려진 ‘부자 청년’ 이야기입니다. 이 청년은 예수께 나아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19:16). 이 질문 속에는 행위 중심의 구원관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선한 일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시고, 청년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합니다. 이 말에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19:21). 그러나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떠납니다.
여기서 핵심은 재물 자체가 아니라, 그 청년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입니다. 예수님은 청년의 외적인 도덕성과 행위보다,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 우상을 보셨습니다. 재물은 그의 정체성이며 안전이자 소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도는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입니다. 누가 내 인생의 주인이냐는 질문 앞에 우리는 매일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시며, 제자들을 놀라게 하십니다(19:24). 이 말씀은 구원이 인간의 능력이나 자격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19:26).
베드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는데 무엇을 얻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에 제자들은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며, 현세에서는 백배를 받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19:28-29). 제자도는 헌신의 길이지만, 동시에 가장 복된 길이며, 하나님께서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보상과 상급의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9:30)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의 기준과 순서가 아니라, 전적인 주님의 주권에 의해 이루어지는 나라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외형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의 질서가 전복됩니다.
결론: 낮아지고, 의지하고, 내려놓는 제자의 삶
마태복음 19장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제자의 걸음을 다시 점검하게 합니다. 결혼의 신성함은 창조 질서에 기초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이라는 거룩함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천국의 기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주를 따른다고 말한다면, 붙잡고 있는 우상을 내려놓고 그분만을 따르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팔고, 주고, 따르라.” 이 부르심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예수님의 음성은 여전히 분명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 속에서는, 오직 낮아지고 비워진 자만이 온전히 채워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주님만을 따르는 제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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