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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해

마가복음 2장 주요 주제와 해설 묵상

by πάροικος 2025.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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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함의 권세와 새 생명의 길

마가복음 2장은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종교 지도자들과의 충돌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되는 장입니다. 죄 사함의 권세 선언, 세리와 죄인들과의 교제, 금식 논쟁, 안식일의 이해 등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과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이 장은 복음이 단지 도덕의 수정을 넘어서 죄인을 구원하고 삶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는 권세임을 선포합니다.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권세 (막 2:1-12)

가버나움 한 집에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무리가 몰려들어 집 안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예수님께 데려오지만, 사람들로 인해 들어갈 수 없어 지붕을 뜯고 달아내립니다(막 2:3-4). 이 장면은 단순한 인간적인 열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행동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에게 먼저 선포하십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전환을 보게 됩니다. 병을 고치는 것보다 앞서 예수님은 죄 사함을 선언하십니다. 이는 유대 종교 체계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의심하며,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속마음을 아시고 반문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막 2:9).

 

예수님은 단지 말로만 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 2:11)고 말씀하시며 실제로 고치십니다. 이는 곧 죄 사함의 권세가 예수님께 실제로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육체의 치유가 아닌,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권세로 죄인을 용서하고 새 생명을 주시는 구속자의 심부름을 시작하셨음을 말해주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복음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기적이나 놀라운 표적이 복음의 중심이 아닙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죄이며, 그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권세가 곧 복음의 본질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예수님께 진정 구해야 할 것은 단지 상황의 변화나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며 그것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부르심과 교제의 은혜 (막 2:13-17)

이어서 예수님은 길을 지나시다 세관에 앉은 레위를 부르십니다(막 2:14). 당시 세리는 유대사회에서 죄인 취급을 받던 직업이었습니다.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거두며, 동족의 고혈을 짜내는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를 예수님은 단 한 마디로 부르십니다. “나를 따르라.”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릅니다. 이는 주님의 부르심이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존재를 새롭게 하시는 능력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어 레위의 집에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십니다(막 2:15). 식사는 단순한 교제가 아니라, 유대 사회에서는 함께하는 자를 수용하고 동일시하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따져 묻습니다.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막 2:16). 예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의 목적을 정확히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의로운 자, 즉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위한 분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와 병듦을 인식하고 주님께 나아오는 자를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복음은 스스로 자격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거리감이 있지만, 절박한 자에게는 생명의 초대가 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식사 자리에 함께 앉을 수 있는 자격 없는 존재들이며, 그분의 은혜로만 초대된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막 2:18-28)

이후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시며(막 2:19), 신랑이 떠나면 그때 금식할 것이라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지금 이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은 기쁨의 때이며, 슬픔의 때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윤리적 개혁자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임재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어 옷 조각과 포도주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느니라"(막 2:22). 이 비유는 예수님의 복음이 기존 유대교적 율법 체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은 기존의 틀로는 담아낼 수 없는 새 생명의 질서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으며, 율법의 외형적 순종보다 내면의 변화와 관계의 회복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안식일 논쟁이 이어집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을 두고 바리새인들이 비난하자, 예수님은 다윗의 예를 들며 사람의 필요가 율법보다 앞설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막 2:25-26). 그리고 결정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이 말씀은 율법의 본래 목적을 회복시키는 선언입니다. 안식일은 인간을 얽매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회복과 쉼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율법의 본래 정신을 회복시키시며, 스스로 율법의 주인이심을 선언하십니다. 이는 단지 규칙의 완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 안식과 자유가 주어진다는 복음의 선언입니다.

 

결론

마가복음 2장은 예수님이 죄인을 향해 어떠한 태도로 다가오시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죄를 사하시는 권세(막 2:5), 죄인을 부르시는 은혜(막 2:17), 율법보다 생명을 귀히 여기시는 마음(막 2:27),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율법을 지키는 스승이 아니라, 새 생명을 주시는 구주이심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 말할 수 없으며, 다만 죄인으로서 은혜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불러 함께 식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자리는 조건 없이 열려 있으며, 오직 회개와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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