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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해/창세기강해

창세기 1장 주석 강해

by πάροικος 2022.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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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주석 강해

 

1절

 

태초에

 

베레쉬트. 처음에, 가장 앞선. 을 뜻한다. 베트는 장소 때 시간을 의미한다. 로쉬는 머리 시작을 말한다. '시작'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NIV는 'In the beginning'로 번역했다. 시작은 변화를 의미한다. 곧 창조다. 영원은 시작도 끝도 없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님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시다.

 

천지

 

하샤마임 하에레츠. 샤마임은 복수형으로 '그하늘들'이다. 히브리인들은 하늘은 복수형으로 표현한다. '그 땅'은 단수형으로 물러 받을 기업이나 사람이 발을 딛고 사는 대지를 표현한다. 즉 천지를 모든 우주를 말한다.

 

창조

 

히브리어 '바라'는 하나님께만 사용된 창조한다는 동사다.

 

하나님

 

엘로힘. 복수형이다.

 

2절

 

땅이

 

그리고 그 땅은

 

혼돈하고

 

모양이 없다.

 

공허하며

 

비어있다.

 

흑암

 

히브리어 '호섹'은 어둠. 앞으로 영적 어둠과 어둠의 세력을 표현할 때 종종 등장한다. 예 출 10:21

 

하나님의 영

 

영은 '루아흐'로 바람 성령 등으로 번역된다. 창 3:8에서는 '춥다'로 번역해 기이한 느낌을 준다. '영'이나 '바람'으로 해석해야 옳다. 즉 하나님의 영이 에덴 동산에 임재하자 아담과 하와가 숨은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에서 도망가는 타락한 인간을 보여준다.

 

수면 위에

 

수면은 물의 얼굴이란 뜻이다. 얼굴 페니은 얼굴 표면 겉 등을 의미한다.

 

운행하다.

 

'운행하다'의 '라하프'는 1:2, 32:11, 23:9 3번 사용된다. 새가 날개를 펴고 날아 다니는 형상이다.

  • 신 32: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3절
 
 
있으라
 
'아마르' '말하다'의 일반적 언어다. 영어성경은 said로 번역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 말씀이 곧 존재이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빛이 만들어졌다가 아니라 빛이 있다이다. 있다는 미완료이며, 히브리에서 미완료는 일어난 사건이나 일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과거형으로 해석하나 완료되지 않은 사건이기에 현재적 과거형이다. 빛이 계속하여 존재해야 하므로 미완료 형태를 서술했을 것이다.
 
 
4절
 
 
좋았다
 
 
히브리어 '토브(טוב)'를 사용한다. 토브는 영어의 good로 해석하기엔 너무나 미흡하다. 물론 좋다는 뜻이지만 완전하다 완벽하다 흡족하다 등의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창세기 2:9를 예로 들면 '아름다운'과 '선악'에서 '선'이 '토브'이다.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나누사

 

나누는 행위는 질서와 연관된다. 혼돈에서 질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누어져야 한다. 낮과 밤이 나뉘고, 하늘과 땅이 나뉜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이어가는 것이 질서이자 소명이다. 죄는 자신의 사명을 버리고 자신의 자리를 떠나  타인의 자리를 탐하는 것이다. 심판은 이 나눔은 다시 뒤섞음으로 처음으로 되돌린다. 홍수의 심판과 바벨론에 의한 이스라엘 심판, 그들의 소명을 빼앗는다.

 

부르시고

 

부르심은 규정이자 규명이며 자리를 지정하는 것이다.  창조와 부름은 다르나 하나다. 창조는 부름을 통해 완성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으로 그들의 삶이 완성된다. 소명은 삶의 완성이다. 그 누구도 소명 없는 자가 없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마땅히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

 

5절

 

첫째날

첫째 날의 사역을 빛으로만 보기에는 모호하다. 1-2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첫째 날이 달라진다. 1-2절은 모든 창조의 서두, 또는 요약일 수 있다. 창세기 1장에는 지구의 창조가 없다. 그러므로 1절의 '하에레쯔'는 지구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창조의 7일은 연대기적이 아니라 상징적이다. 하지만 상징적이 것이 연대기와 대립하지 않는다. 창조의 비밀은 아직 모른다. 하여튼 첫째날이 끝났다.

 

물 가운데 궁창

궁창은 공간이다. 공간은 물과 물의 분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은 후에 노아의 홍수와 이어진다.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이 합치는 날 심판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마른) 땅은 물과 물 사이에 있으며, 언제나 물은 땅을 덮치기 위해 준비 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 말씀이 있을 때 안전하다.

 

7절

 

그대로 되니라

 

말씀은 곧 존재요 행위다. 모든 피조물은 말씀으로 존재되고, 행한다.

 

8절

 

하늘은 '샤미임'이다. 정확히는 하늘들이다.

 

궁찰과 하늘

 

궁창(라카히)와 하늘(샤마임)은 존재와 이름으로 완성된다. 이름은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 소명을 부여한다.

 

9절

 

뭍이 드러나라

 

뭍은 창조되지 않았다. 바로 이 부분이 1절의 에레쯔가 지구 창조를 의미함을 드러낸다. 뭍은 '바샤'로 '마른 땅'을 말한다. (14:16, 14:22, 29, 15:19, 4:22) 마른 땅은 물 속에 있다. 반대로 물 속으로 가라 앉을 수 있다. 에바샤에서 에덴 동산을 만든다. 출애굽 당시의 홍해 도하사건, 여호수아의 요단 도하 사건은 정확히 '마른 땅(바샤)를 사용한다. 이스라엘은 마른 땅, 즉 구원의 땅이자 하나님의 선물의 땅을 디뎠다. 그 땅은 원래 물 속에 있었고, 언제나 물 속으로 들어가려는 성징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 않는가.?

 

뭍과 땅

 

하나님은 뭍(바샤)를 땅(에레쯔)로 부르신다. 그리고 물을 바다라 부르신다.

 

땅은 내라

 

땅(에레쯔)은 각종 식물을 내야 한다. 씨(제라)는 다음 세대의 비전이다.

 

16절

 

주관하게

 

주관(메므샤라)는 왕의 권력과 영향력을 상징한다. 광명체는 하늘에서 왕처럼 땅을 비추고 다스린다.

  • 왕상 9:19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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