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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해

누가복음 18장 주요 주제와 해설 묵상

by πάροικος 2025.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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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서는 믿음의 자세

누가복음 18장은 기도, 겸손, 믿음, 헌신 등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요구되는 영적 태도를 예수님의 비유와 사건들을 통해 진지하게 가르치십니다. 이 장은 제자의 삶이 단지 종교적 행위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마음과 실제적인 헌신으로 세워져야 함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참된 경건은 위선과 형식이 아니라, 낮아짐과 간절함 속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누가복음 18장은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니라”(눅 18:1)라는 소개와 함께 시작됩니다. 비유는 한 성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고, 한 과부가 날마다 찾아와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고 간청하는 장면입니다.

이 재판관은 처음에는 듣지 않지만, 과부의 끈질긴 요청에 “이 여인이 나를 번거롭게 하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번거롭게 한다’는 헬라어 ‘휘포피아조’(ὑπωπιάζω)는 원래 권투 경기에서 눈 밑을 치다, 혹은 녹초가 되게 한다는 의미로, 과부의 끈질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 18:7)고 반문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응답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분은 결코 무관심하지 않으시며, 반드시 신실하게 응답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물으시며, 기도와 믿음의 지속성에 대한 도전을 남기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일치시켜 가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과부의 끈질김은 믿음의 인내를 상징하며, 우리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응답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자

이어지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는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겸손과 의로움이 무엇인지 강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눅 18:11). 그는 금식과 십일조까지 자랑하며, 외형적으로는 흠이 없는 경건의 모범처럼 보입니다.

반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고 선언하십니다(눅 18:14).

여기서 ‘의롭다 하심’은 헬라어 ‘디카이오오’(δικαιόω)로, 법정적 선언으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복음의 핵심 개념입니다. 이 장면은 행위나 외형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심령의 상태가 진정한 경건의 기준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8:14)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세상의 질서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선언입니다. 복음은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를 거절하시고, 자신을 낮추며 긍휼을 구하는 자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냅니다.

 

아이들과 부자 관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예수께 데려오자 제자들이 꾸짖지만,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눅 18:16)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받들다’는 헬라어 ‘데쾰마이’(δέχομαι)는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자세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회개와 믿음의 본질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부자 관원의 장면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데 있어 ‘재물’이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하지만, 예수님께서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눅 18:22)고 하십니다.

그는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며 떠납니다. 그는 율법을 따랐지만,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보다 재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다”(눅 18:25)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부정적인 선언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강조하며, “하나님께는 할 수 있다”(눅 18:27)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우리는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으리라”(눅 18:29-30)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희생을 기억하시며, 이 땅과 장차 올 나라에서 충만한 보상으로 갚으십니다.

 

수난 예고와 여리고의 맹인: 믿음의 눈으로 주를 따르다

예수님은 다시금 열두 제자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과 능욕과 침 뱉음을 당하겠고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눅 18:32-33).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길이 인간의 기대와 완전히 다른 길임을 의미합니다.

이후 예수님이 여리고에 가까이 가실 때 한 맹인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꾸짖지만, 그는 더욱 크게 외칩니다. 예수님은 그를 가까이 부르시고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답하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8:42)고 말씀하시며 그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맹인의 외침은 믿음의 고백이며,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인정하는 선언입니다. 그는 육체의 눈뿐 아니라, 영의 눈으로 예수님을 본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 예수님을 따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결론

누가복음 18장은 하나님 앞에 서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에 대해 매우 깊은 메시지를 줍니다. 끈질긴 기도로 응답을 구하는 믿음, 겸손하게 죄를 고백하며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은혜,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재물보다 주님을 따르는 결단, 그리고 맹인처럼 예수님의 자비를 향해 부르짖는 절박함. 이 모든 장면은 참된 믿음의 요소이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백성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믿음으로 주 앞에 서 있습니까? 형식과 행위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진실한 회개와 전심의 믿음으로 주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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