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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해

마가복음 5장 주요 주제와 해설 묵상

by πάροικος 2025.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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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일어나는 믿음의 회복

마가복음 5장은 세 가지 극적인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절망과 죽음, 고통과 부정함 속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회복시키시는지를 보여줍니다. 거라사 귀신들린 자, 혈루증 앓던 여인, 죽은 야이로의 딸. 이들의 공통점은 인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이며, 예수님은 이들을 회복시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절망의 경계에서 시작된다는 복음의 본질을 드러내십니다.

 

거라사인의 광인에게 임한 자유 (막 5:1-20)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 건너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셨을 때, 무덤 사이에 살고 있던 귀신 들린 자가 나와 맞섭니다. 이 사람은 쇠사슬로도 맬 수 없을 만큼 강한 존재가 되었고, 밤낮으로 무덤 사이를 뛰며 돌로 자기 몸을 해치는 모습은 인간이 영적으로 얼마나 깊은 타락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막 5:3-5).

 

이 귀신 들린 자는 예수님을 멀리서 보고 달려와 경배하며 외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막 5:7).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귀신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예수님은 귀신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이름이 무엇이냐?” 그는 대답합니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막 5:9). '군대'(레기온)는 로마 군단을 뜻하는 단어로, 단순한 한 마리 귀신이 아닌 조직화된 악의 세력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그 귀신들을 허락하셔서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 돼지들이 바다로 몰살하는 장면은 하나님 나라의 권세가 어둠의 권세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막 5:13). 하지만 이 사건 후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두려워하며 예수님께 떠나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들은 귀신 들린 자의 회복보다 돼지 떼의 손실을 더 크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 귀신 들렸던 사람은 이제 온전하게 되어 예수님과 함께 있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막 5:19). 복음은 그를 따라오는 삶만이 아니라, 그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 예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이유는 단지 평안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만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전파하는 삶으로 부르시는 데 있습니다.

 

열두 해를 앓던 여인의 손끝 믿음 (막 5:25-34)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길에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그녀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고, 많은 의원에게 고통을 받았지만 오히려 병이 더 심해졌습니다(막 5:25-26). 이 여인의 상태는 단지 육체적 질병만이 아니라, 유대 율법에 따르면 부정한 존재로 간주되어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녀는 군중 속에 숨어 조용히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막 5:28). 이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을 향한 절박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말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드러난 행동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즉시 아시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다(막 5:30).

 

여인은 두려움 가운데 나와 모든 사실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 5:34)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그녀를 ‘딸’이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 호칭은 단지 치유의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안에서 그녀의 정체성과 자리를 회복시켜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복음은 병을 고치는 것을 넘어서 그 사람의 존엄과 자리를 새롭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죽음의 경계를 넘는 생명의 권세 (막 5:21-24, 35-43)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어린 딸이 죽어가고 있으니 오셔서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야이로는 유대 회당의 지도자였고, 예수님과는 어쩌면 거리를 두어야 할 입장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위신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막 5:22-23). 이는 생명을 향한 간절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도중에 혈루병 여인의 사건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지체되는 사이 사람들은 야이로에게 딸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막 5:35). 이제는 소망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막 5:36). 이 말씀은 절망 속에 있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믿음을 끝까지 놓지 말라는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통곡하는 무리들을 내보내신 후,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생명의 권세를 나타내는 명령입니다(막 5:41). 그 즉시 소녀는 살아나고, 예수님은 곧 음식을 주라고 하십니다. 이는 단지 기적의 과시가 아니라, 실제적인 회복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세심한 배려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도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도 자유케 하시며,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마가복음 5장은 복음이 어떤 사람을 위한 것인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사람,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복음은 생명의 소식으로 다가옵니다.

 

결론

마가복음 5장은 세 명의 인물을 통해 복음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귀신 들린 자, 혈루증 여인, 죽은 소녀. 그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변화될 수 없었던 존재들이지만,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새로워졌습니다. 복음은 단지 육신의 회복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오늘 신앙의 자리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의 회복은 언제나 절망의 한복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깊은 상처 가운데 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 음성에 반응하는 믿음이 우리 삶에 생명의 기적을 가져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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