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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해

마태복음 17장 주요 주제와 해설 묵상

by πάροικος 202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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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과 고난 사이, 변화산의 빛과 십자가의 길

마태복음 17장은 신약 성경에서 가장 신비로운 장면 중 하나인 변화산 사건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신성과 인격, 그리고 제자도에 관한 깊은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잠시 보여주시지만, 곧 이어지는 말씀과 사건을 통해 그 영광이 고난을 통해 완성됨을 강조하십니다. 또한 믿음의 부족함과 제자도의 훈련, 그리고 일상의 작은 순종까지 복음은 전 삶을 관통하는 능력임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변화산에서 드러난 예수님의 영광

17장은 “엿새 후에”라는 시간적 전환으로 시작됩니다(17:1). 이는 16장에서 있었던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십자가 예고 이후의 사건임을 명확히 보여주며, 구속사적 맥락에서 이 장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시고, 그들 앞에서 변형되십니다. 그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17:2).

 

헬라어로 "변형되다"는 단어는 ‘μεταμορφόω’(메타몰포오)인데, 이는 본질적인 존재의 변화를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단지 외적인 모습의 변화가 아니라, 예수님의 참된 신적 본성이 순간적으로 그들의 눈앞에 드러난 것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 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참 하나님이시며, 장차 영광 중에 오실 메시아이심을 나타냅니다.

 

이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나타나 대화합니다(17:3). 모세는 율법을,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며,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의 성취자이심을 상징합니다. 누가복음 9장 병행 구절에 따르면, 그들이 대화한 주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별세'(죽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변화산의 영광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이 장면을 영구히 보존하고 싶어하며 초막 셋을 짓자고 제안하지만, 이는 인간적인 정서에서 비롯된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17:5)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적 아들 되심을 공적으로 확증하는 선언이며, 세례 때와는 달리 제자들도 그 음성을 들은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이 음성은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졌을 때처럼 거룩한 두려움 가운데 임했고, 제자들은 땅에 엎드려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가가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17:7). 영광 중에서도 제자들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자비로운 성품은,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다가오시는 성육신의 은혜를 상기시켜 줍니다.

 

이 영광스러운 변화의 사건은 일시적인 체험이었고, 예수님은 이 일을 부활 이후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17:9). 그 이유는 아직 제자들의 이해가 온전히 준비되지 않았고, 이 영광은 십자가 이후에야 참된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계시의 타이밍조차 구속사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십니다.

 

믿음 없는 세대와 불신의 문제

산 아래로 내려온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한 아버지의 간절한 요청이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간질로 고통받고 있었고, 제자들은 아무리 애써도 고치지 못했습니다(17:14-16). 예수님은 탄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참으리요”(17:17).

 

여기서 예수님은 단지 아버지나 아들을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 전체와 세대를 향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믿음 없음’은 단지 기적을 일으키지 못한 무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소년을 꾸짖으시고 즉시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창조적 능력이 있으며,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그 능력 아래에 회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후 제자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를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17:19).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고 말씀하시며,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십니다(17:20). 여기서 '작은 믿음'은 양의 많고 적음보다, 믿음의 본질과 방향에 관한 문제입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믿음은 작아 보이나 무력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겨자씨처럼 작아 보여도 능력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제자도와 신앙생활의 본질을 다시금 점검하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방법과 감정에 따라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일부 사본)에 대한 언급으로, 깊은 영적 삶이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는 길임을 교훈하십니다.

 

두 번째 수난 예고와 세금 문제를 통한 순종의 지혜

이 장 후반부에서 예수님은 다시금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17:22-23).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제자들은 매우 근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복해서 자신의 길을 말씀하시며,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완전한 순종이며, 그 속에 구속의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유한 분이지만 홀로 독답적으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자신을 드려니빈다. 

 

마태복음 17장의 마지막 장면은 다소 독특한 세금 문제입니다. 가버나움에 도착하신 예수님께, 반 세겔 세금(성전세)에 관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당시 유대 남성들은 성전 운영을 위해 일정한 세금을 바쳤는데, 이들이 예수님께 그것을 내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왕의 자녀들이 세금을 내느냐 묻고, 그들이 면제받는다는 사실을 이끌어냅니다(17:25-26).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그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17:27) 세금을 내기로 하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방식으로—물고기 한 마리의 입 속에서 은 한 세겔을 얻어 반 세겔씩 나누어 내게 하십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기꺼이 낮아지신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이 겸손과 지혜는 우리 신앙생활의 중요한 본보기가 됩니다. 우리는 자유하지만, 공동체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때로는 자유를 절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랑과 질서 안에서 순종과 섬김으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의 전초기지입니다.

 

결론: 변화산의 빛이 비추는 제자의 길

마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영광과 고난, 능력과 섬김이 함께 어우러진 복음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변화산의 찬란한 빛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지만, 그 빛은 십자가의 어두움을 통과한 후에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러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감격하지만, 더 자주 우리는 산 아래에서의 무력함과 혼란 속에서 믿음을 훈련받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가오셔서 손을 내미시며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믿음 없는 세대 한복판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며, 순종으로 살아가는 제자들이 필요합니다. 작아 보여도 하나님을 향한 겨자씨만한 믿음, 이해하지 못해도 순종하는 자세,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낮추는 헌신—이것이 오늘 우리가 걸어야 할 변화산 이후의 제자도입니다.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부활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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