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길을 가는 지혜, 산상수훈의 결말
마태복음 7장은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으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어떻게 분별하고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강하게 요청합니다. 이 장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전 인격적 결단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기준, 참된 기도, 좁은 문과 넓은 길, 거짓 선지자와 참 제자의 구분, 반석 위에 세운 집의 비유를 통해 천국 백성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을 분명히 제시하십니다.
판단하지 말라: 은혜 안에서의 분별력
7장의 첫 절은 자주 오해되는 구절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7:1). 이 말씀은 어떤 판단도 하지 말라는 절대적 금지 명령이 아닙니다. 헬라어 "κρίνετε"(크리네테)는 판단하다, 평가하다, 정죄하다의 의미를 모두 내포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경고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여 남을 정죄하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태도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7:2)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준과 태도로 우리를 평가하신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남의 눈 속 티를 보면서 자기 눈 속 들보는 보지 못하는 모습은, 외식적인 신앙과 자기 의에 빠진 심령을 지적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흐름을 보면, 비판 자체보다 문제 삼으시는 것은 위선입니다. 참된 제자는 자신을 깊이 살피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이를 돕는 사람입니다.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7:5)고 하신 말씀은, 자기 성찰이 앞서야 올바른 분별이 가능하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또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지 말라"(7:6)는 말씀은, 무분별한 선포나 권면에 대한 경고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분별 있게 전해져야 하며,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극도로 경건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판단이 아니라 분별입니다. 성도는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진리 안에서 바르게 분별하는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라
7:7부터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도하며 구하는 삶에 대한 초청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7). 이 세 개의 동사는 모두 현재 시제이며, 계속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한 번의 시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신뢰와 인내의 표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기도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 근거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예로 드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11). 하나님은 인색한 분이 아니라, 자녀의 필요를 아시고 선하게 응답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기도는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맞춰지고, 우리의 욕망이 정화되며, 그분의 공급하심을 신뢰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마음을 열고, 그 뜻을 따라 사는 삶으로 이끌어가십니다.
또한 7:12은 산상수훈의 요약과도 같은 황금률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은 율법과 선지자의 본질을 요약한 것으로, 관계 안에서의 진정한 사랑과 존중을 말합니다. 기도와 황금률은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녀로 살아가는 삶의 열매입니다.
좁은 문과 참된 제자의 길
예수님은 이어서 천국으로 가는 길에 대한 진지한 권면을 주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7:13-14). 이 말씀은 신앙의 길이 본질적으로 좁고 험하다는 현실을 말씀하십니다.
헬라어로 "좁다"는 "τεθλιμμένη"(테슬리멘네)는 ‘눌림을 당한’, ‘압박된’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어려움이 아니라, 죄와 세상의 유혹, 자기 부인을 포함한 영적 투쟁의 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된 믿음은 수고와 헌신을 요구하며, 그 길을 선택하는 자는 소수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를 주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7:15). 이들은 외형적으로는 경건하고, 말씀을 말하는 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욕심을 채우며 공동체를 해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7:16)라고 하셨습니다. 말이 아니라 삶의 열매가 그들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가장 두려운 경고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7:21-22).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사역도 했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7:23)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불법은 헬라어로 "ἀνομία"(아노미아), 곧 하나님의 뜻에 대한 거부, 말씀에 대한 무시를 뜻합니다.
신앙은 말이나 외적인 활동이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 주로 모시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삶입니다. 참된 제자는 단지 열심히 일하는 자가 아니라, 주의 뜻을 알고 그것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결론: 반석 위에 집을 세우라
산상수훈의 마지막은 잘 알려진 비유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7:24). 여기서 핵심은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처럼, 환난과 시험 앞에 쉽게 무너집니다.
반석은 그리스도 자신이며, 그 말씀입니다.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신앙은 감정에 치우치고, 상황에 흔들리며,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말씀 위에 삶을 세운 자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마태는 이 말씀을 마치며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라"(7:28-29)고 기록합니다. 산상수훈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왕 되신 예수님의 명령이며, 권세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느 문을 향해 걷고 있는가? 나는 말씀을 듣는 자인가, 행하는 자인가? 나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는가, 아니면 그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산상수훈은 이론이 아니라 삶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를 부르고, 변화시키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게 합니다. 좁은 길이지만, 그 길 끝에는 생명이 있고, 예수님이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그 길을 함께 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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