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요약
요한복음 4장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제자들에 대한 가르침,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사건을 다룹니다. 예수님은 수가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 "생수"를 약속하시며 참된 예배를 가르치십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깨닫고 마을에 전파하여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믿게 됩니다. 이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적 추수의 중요성을 가르치십니다. 갈릴리에서는 왕의 신하의 병든 아들을 말씀으로 치유하시며 믿음을 확증하십니다.
구조분석 제목
-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생수와 참된 예배 (4:1-26)
-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영적 추수의 의미 (4:27-38)
- 사마리아인들의 믿음: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 (4:39-42)
-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믿음의 확증 (4:43-54)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생수와 참된 예배 (요한복음 4:1-26)
요한복음 4장 1-26절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의 대화를 중심으로 한 말씀입니다. 이 대화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갈등, 여인의 개인적인 삶의 문제, 그리고 예배의 본질을 다루며, 예수님이 구원의 메시지를 전 인류로 확장하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또한, "생수"와 "참된 예배"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의 영적 갈증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사마리아에서의 만남: 편견을 넘어서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과의 접촉을 꺼렸지만, 예수님은 수가라 불리는 마을의 우물가에 머무르시며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시작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편견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시며 대화를 시작하십니다. 이는 유대인 남성으로서 사마리아 여인과 직접 대화하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여인은 이를 이상히 여기며,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그분의 구원이 특정 민족이나 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가 복음의 메시지를 누구에게나 전해야 하는 사명을 상기시켜 줍니다.
생수의 약속: 영적 갈증을 채우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여인의 질문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며, "생수"의 약속을 제시하십니다. 여기서 생수는 성령과 영원한 생명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삶의 본질적인 갈증, 즉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영적 공허를 해결하기 위해 이 약속을 하십니다.
여인은 처음에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며, "그 물을 내게 주사 다시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반응합니다. 이는 우리도 종종 육체적 필요와 문제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단순히 물리적 필요를 채우는 것을 넘어, 영혼의 깊은 갈망을 만족시키시는 분입니다.
여인의 삶을 드러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대화의 중간에 여인의 개인적인 삶의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그는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시며, 여인의 복잡한 과거와 현재를 드러내십니다.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다"고 대답했고, 예수님은 그녀가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남편이 아님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내면을 꿰뚫어 보시며, 겉으로 드러난 문제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은 죄와 상처까지도 아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여인의 삶을 드러내신 것은 단순히 그녀를 책망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는 그녀의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도록 초대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의 은혜로 회복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참된 예배의 가르침
여인은 예수님의 통찰에 감명을 받고, 예배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녀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각각 예루살렘과 그리심산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통을 언급하며, 어디서 예배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이는 인간이 종종 예배의 장소나 형식에 집착하며, 예배의 본질을 놓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참된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고 말씀하시며, 참된 예배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이며, 특정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영과 진리"는 예배의 본질을 잘 나타냅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하며,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배를 뜻합니다. 참된 예배는 외적인 형식이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진리 안에서의 헌신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메시아의 선언
대화의 끝에서 여인은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언급하며,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내가 그라"고 직접적으로 선언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자신의 메시아 됨을 분명히 밝히신 중요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그는 자신이 참된 예배를 이루시고 영적 갈증을 해결하시는 구주임을 선언하십니다.
묵상과 적용
요한복음 4:1-26은 우리의 영적 갈증과 참된 예배의 본질을 묵상하게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삶의 문제와 영적 공허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아셨지만,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생수의 약속과 참된 예배의 길로 초대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여인처럼 겉으로 드러난 문제와 내면의 갈망으로 인해 예수님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의 영혼 깊은 곳까지 채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는 생수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게 하십니다.
또한, 이 말씀은 참된 예배의 본질을 가르칩니다. 예배는 특정 장소나 형식에 제한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영 안에서 진리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그와의 깊은 교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가 되도록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받아 영적 갈증이 해소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의 예배가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진정한 교제로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참된 생명과 예배의 기쁨을 누리며,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영적 추수의 의미 (요한복음 4:27-38)
요한복음 4장 27-38절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영적 추수의 본질과 긴박성을 가르치시는 장면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이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나누시며, 영적 추수의 개념을 설명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우리의 사명을 묵상하게 됩니다.
제자들의 혼란과 질문
제자들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지만, 그들은 직접적인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과 교류하지 않았고, 특히 남성이 여인과 단둘이 대화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편견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어떠한 장벽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제자들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그는 세상의 관습과 한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시며,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열린 태도를 배우도록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복음을 전함에 있어 어떠한 문화적, 인종적, 또는 사회적 경계도 두지 않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양식: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제자들이 예수님께 드시도록 음식을 권하자, 예수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느니라"고 대답하십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며 누군가 예수님께 음식을 드렸는지 의아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어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큰 만족과 기쁨의 원천임을 밝히십니다.
이 구절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육체적 필요에 집중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양식임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은 우리의 영혼을 충족시키고,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제공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의 사역에 동참할 때, 우리는 영적인 만족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영적 추수의 긴박성과 협력
예수님은 이어서 추수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영적 사역의 중요성과 긴박성을 가르치십니다. 그는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고 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물으시며, 영적 추수는 지금 바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는 말씀은 복음 전파의 시기가 이미 도래했으며, 사역이 시급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영적 추수에서의 협력의 중요성을 가르치십니다. "하나가 심고 다른 이가 거두느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역이 여러 사람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이는 씨를 뿌리고, 어떤 이는 추수하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동역자로 부름받았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일에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영적 추수의 기쁨과 보상
예수님은 추수하는 자와 뿌리는 자가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모든 이들이 결과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사역이 당장 열매를 맺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를 사용하시어 그의 구원 계획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는 일에 참여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사역이 다른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 위에 세워졌음을 보여줍니다. 복음 전파의 사역은 한 세대의 노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의 기초 위에 다음 세대가 지속적으로 사명을 이어가는 연속적인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묵상과 적용
요한복음 4:27-38은 예수님이 영적 추수의 중요성과 본질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영적 사역의 긴박성과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기쁨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 어떠한 경계나 장벽도 두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의 만족과 삶의 의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필요와 욕망에만 머물지 말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협력과 연속성을 통해 이루어지며, 우리는 그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동역자로 부름받았습니다.
또한, 영적 추수는 지금 바로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며, 복음의 메시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이 씨를 뿌리는 것이든, 추수하는 것이든,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며 그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헌신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사용되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영적 추수의 의미를 깊이 새기며, 그의 사역에 동참하는 기쁨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마리아인들의 믿음: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 (요한복음 4:39-42)
요한복음 4장 39-42절은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전파된 복음이 마을 전체로 확장되며,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복음 전파의 영향력과 믿음의 본질, 그리고 예수님이 전 인류의 구주로 오셨음을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여인의 간증을 통한 변화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 후,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에 대해 증언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는 그녀의 말은 단순하지만 강력했습니다. 그녀의 간증은 마을 사람들에게 깊은 호기심과 영적 갈망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그녀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한 사람의 간증이 복음 전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간증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줄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의 간증은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도구이며, 예수님의 사역을 세상에 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의 예수님 체험
여인의 증언으로 인해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여인의 말을 믿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 직접 나아가 그의 말씀을 듣고 체험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우리와 함께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고, 예수님은 이틀 동안 그들과 함께 머무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단순히 여인의 간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확고해졌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줄 아노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단순히 유대인의 메시아가 아닌 온 인류의 구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믿음이 단순히 간접적인 경험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과 관계를 통해 자라나야 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전 인류의 구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고백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자신들만의 구원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지만,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모든 민족과 사람들의 구주로 인정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구원이 특정 민족이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인류를 향한 보편적인 구원임을 드러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믿고, 그의 복음을 전 인류와 나누는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복음은 문화적, 인종적, 사회적 경계를 초월하며,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로 초대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의 고백은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전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묵상과 적용
요한복음 4:39-42는 예수님을 만난 한 사람의 간증이 어떻게 공동체 전체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본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전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는 우리의 작은 간증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사마리아인들의 고백은 믿음이 간접적인 경험에 머물지 않고, 예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자라나야 함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단지 다른 사람의 간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인격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며,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히 세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본문은 예수님이 전 인류의 구주이심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며,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인류를 향하고 있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이 보여준 믿음과 고백은 우리가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고백하며, 그의 사역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가르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간증이 복음 전파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또한,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깊게 하고, 그의 사랑과 구원을 세상에 나누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고백하며, 그의 복음이 우리 삶과 주변 사람들에게 확장되기를 간구합시다.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믿음의 확증 (요한복음 4:43-54)
요한복음 4장 43-54절은 예수님이 갈릴리로 돌아가신 후, 왕의 신하의 병든 아들을 치유하신 사건을 기록합니다. 이 이야기는 믿음의 여정을 보여주며,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통한 믿음의 확증을 묵상하게 합니다. 왕의 신하가 보여준 믿음의 점진적인 발전은 우리가 신앙 생활에서 경험하는 믿음의 단계를 잘 나타냅니다.
배경: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예수님은 사마리아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영은 표면적이며, 단지 기적을 기대하는 데 그친 것이었습니다. 이는 진정한 믿음이 기적 자체가 아닌 예수님의 말씀과 인격에 기반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왕의 신하의 간청: 믿음의 시작
한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는 아들이 중병에 걸려 죽음 직전에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마지막 희망으로 여겼습니다. 이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기적적인 능력을 신뢰했지만, 그 믿음은 여전히 육체적 치유라는 한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이 종종 문제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며, 사람들이 표적에 의존하는 믿음을 경고하십니다. 이는 진정한 믿음이 기적에 의존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인격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신하의 반응
신하는 다시 한 번 간청하며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라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때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의 믿음은 더 이상 예수님이 물리적으로 아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묶이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단계로 발전합니다.
이 장면은 믿음이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데 있음을 가르칩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행동함으로써, 그의 믿음이 기적을 경험하기 위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할 때 성장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치유의 확증: 믿음의 완성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신하는 종들로부터 아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가 아들의 회복 시간을 확인했을 때,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순간임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은 그의 믿음을 더욱 확증시켰으며,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장면은 기적이 믿음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믿음을 확증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왕의 신하는 처음에는 단순히 아들의 치유를 바라는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 사건을 통해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갔습니다. 온 가족이 믿게 되었다는 점은 그의 믿음이 단순히 개인적인 체험에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나타냅니다.
묵상과 적용
요한복음 4:43-54는 믿음의 성장과 확증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왕의 신하는 아들의 치유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체험하며, 단순한 기대에서 시작된 믿음이 온전한 신뢰로 발전합니다. 그의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확증되었으며, 결국 온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기적 자체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근거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은 단순히 개인적인 축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파되어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믿음이 단순한 기대를 넘어 예수님의 말씀과 인격에 대한 깊은 신뢰로 나아가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이루신 일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확증되며,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을 미치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믿음의 더 깊은 단계로 이끄시는 분임을 기억하며, 그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요한복음 장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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