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무너진 자리, 더 이상 손댈 수 없다고 방치해 둔 영역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곳에 다시 찾아오셔서 우리를 일으키시고 회복의 길로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1장 1절부터 11절까지는, 모든 회복은 ‘기도하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왕궁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예루살렘의 고통을 들었을 때 그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성벽보다 더 무너져 있던 민족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중보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하나님께서 다시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의 비극을 들었을 때 마음이 깨어지는 사람 (느 1:1–3)
느헤미야서는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느 1:1)라는 기록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디브레’(דִּבְרֵי)로,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해석된 기록’, 곧 하나님 앞에서 재해석된 역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단순히 과거를 서술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읽어내는 신학적 증언자입니다.
그는 당시 페르시아의 왕궁인 수산성에서 고위 관료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생 하나니와 몇 사람이 유다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현실을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한 말은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사로잡힘에서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느 1:3)고 말합니다.
여기서 ‘허물어졌다’는 동사 ‘파르츠’(פָּרַץ)는 찢겨지고, 무너지고, 방치되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히 건축물이 손상되었다는 표현이 아니라, 백성의 정체성과 영적 기반이 붕괴되었다는 상징적 진술입니다. 성문이 불탔다고 말할 때 사용된 ‘바사르’(בָּעַר)는 ‘타오르다’, ‘사라지다’는 뜻으로, 하나님 백성의 영광이 사라지고 수치를 당한 상태를 깊이 묘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무너진 곳의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사람마다 반응은 다릅니다. 누군가는 모른 척하고, 누군가는 비난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돌아섭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달랐습니다. 그는 마음이 깨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현실의 아픔을 들을 때 마음이 무뎌지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변화와 회복의 시작입니다.
절망을 기도로 밀어 넣는 사람 (느 1:4)
느헤미야는 그 소식을 듣고 무너져 버립니다.
“앉아서 울며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 1:4).
‘울다’라는 ‘바카’(בָּכָה)는 일시적 감정 폭발이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탄의 울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슬퍼하다’는 단어 ‘에벨’(אָבַל)은 ‘애도하다’, ‘장례식을 치르는 듯한 슬픔’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는 마치 민족의 장례를 치르듯 아파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로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이 비극을 역전시키실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절망의 무게를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은 슬퍼할 줄만 알고 기도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기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슬퍼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슬픔과 기도를 하나로 묶는 사람이었습니다.
슬픔을 기도로 밀어 넣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역사의 문을 다시 여십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언약의 하나님”을 붙든 기도 (느 1:5–7)
느헤미야의 기도는 단순한 감정의 토로가 아닙니다. 그는 기도의 방향과 내용까지 철저히 언약 신학 안에서 구조화합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여”(느 1:5).
여기서 ‘언약을 지키다’라는 단어는 ‘샤마르’(שָׁמַר)인데, 이는 단순히 보관한다는 뜻이 아니라 언약을 끝까지 보호하시며 충실하게 이행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감정적 신이 아니라, 언약에 따라 행동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민족의 죄를 인정하며 철저히 고백합니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느 1:6–7).
‘범죄하다’라는 말 ‘하타’(חָטָא)는 ‘목표에서 벗어나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이는 단순한 윤리적 실수나 도덕적 약점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존재 목적에서 이탈했다는 영적 고백입니다. 느헤미야는 죄를 외부 요인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지 않고, 민족 전체의 책임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을 시작하시는 첫 단계는 언제나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고백 없는 회복은 없습니다.
회개 없는 재건은 없습니다.
슬픔만 있고 회개가 없다면 단지 감정적 동요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강력한 중보기도 (느 1:8–10)
느헤미야는 이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약속을 붙듭니다.
“만일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면 내가 흩은 자를 하늘 끝에서라도 모아…”(느 1:9).
여기서 ‘돌아오다’라는 히브리어 ‘슈브’(שׁוּב)는 구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회복의 동사입니다. ‘완전히 방향을 전환하다’, ‘신앙의 중심으로 복귀하다’, ‘관계적 재연결을 이루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느헤미야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들은 주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자들입니다”(느 1:10).
‘구속하다’의 원어는 ‘파다’(פָּדָה)로, 값을 치르고 되찾아 온다는 의미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돌려 보내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구속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 장면은 단순한 민족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룰 “완전한 구속”의 예표적 그림입니다.
하나님은 파괴된 곳을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이며, 그 절정은 십자가와 부활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한 ‘문을 여는 기도’ (느 1:11)
마지막 절에서 느헤미야는 말합니다.
“오늘 주의 종이 형통하기를 원하오며…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느 1:11).
‘형통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찰라흐’(צָלַח)으로, ‘전진하다’, ‘돌파하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 성공으로 이끌리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단순히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향한 영적 추진력입니다.
그는 왕의 술관원이었습니다(느 1:11).
술관원은 단순한 하인이 아닙니다. 왕의 신뢰를 받는 고위 관리이며, 왕과 대면하는 자입니다.
이 말은 곧 느헤미야가 하나님께서 역사적 회복을 이루기 위해 준비한 자리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회복을 위해 사람을 준비하시고, 사람을 통해 문을 여십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열어 주시도록 구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일하시길’ 원하지만, 하나님은 ‘기도하는 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 1장은 단순한 역사적 서론이 아니라, 모든 회복의 영적 메커니즘을 선명하게 드러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시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현실의 아픔을 들을 때 마음이 깨어지는 사람을 통해 시작되며,
- 슬픔을 기도로 밀어 넣는 사람을 통해 움직이며,
- 언약의 하나님을 붙드는 회개와 중보를 통해 확장되며,
-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의 헌신을 통해 열립니다.
이 모든 과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구속의 패턴’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십자가는 절망의 자리에서 시작되었지만, 부활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기도의 자리에서 열렸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러한 구속사적 회복의 예표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곳에서 다시 일하실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느헤미야처럼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여러분의 눈물이 기도로 바뀌며,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의 회복의 문을 여는 도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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