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주해/요약설교

느헤미야 2:1–20 설교

by πάροικος 2025. 11. 13.
반응형

하나님의 선한 손이 열어 가시는 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집으로 나아와 예배의 자리에 앉으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이끌어 오셨다는 증거입니다. 오늘은 느헤미야 2장 1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 사람의 기도와 헌신을 통해 역사를 움직이시고,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시는지를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1장에서는 느헤미야가 눈물과 회개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깨어지는 과정을 보았다면, 2장은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실제 역사의 문을 여시는 장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삶의 중요한 결단과 변화의 순간에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반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길을 열어 가시는지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다림 속에서 성숙해지는 믿음 (느 2:1–3)

본문은 “아다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느 2:1)이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1장에서 느헤미야가 기도하기 시작한 때는 ‘기슬르월’이었습니다. 기슬르에서 니산까지는 약 네 달의 시간이 흐릅니다. 느헤미야는 즉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울고 금식하고 기도한 후에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침묵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기다림’입니다. 성경은 기다림을 단순한 시간 보류로 말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카바’(קָוָה)는 ‘실을 꼬아 강하게 만든다’는 뜻에서 파생된 말로, 기다림은 영적 힘을 강화시키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이 기다림의 시간은 그저 막막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도래할 준비의 시간이었습니다. 왕 앞에서 슬픈 얼굴을 보이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지만(느 2:2), 그의 슬픔은 억지로 숨길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왕은 “네 얼굴에 수색이 있으니 이는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느 2:2)라고 말합니다.
‘수색’이라는 단어 ‘라’(רַע)는 ‘악한 표정’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이것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얼굴에 깊이 새겨진 고통의 흔적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는 두려웠다고 고백합니다(느 2:2). 여기서 ‘두려워하다’라는 히브리어 ‘야레’(יָרֵא)존재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떨림을 뜻합니다. 왕 앞에서 잘못 행동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슬픔을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 슬픔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도록 내어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려는 ‘거룩한 부담’이 있습니다. 그 부담을 숨기고 외면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처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 그 한 사람을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사용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담대함 (느 2:4–8)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느 2:4)라고 물었을 때, 느헤미야는 즉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느 2:4) 답합니다.

여기서 ‘묵도하다’라는 표현은 짧은 기도였지만, 히브리어적 관점에서 ‘팔랄’(פָּלַל), 즉 하나님의 판단과 개입을 요청하는 기도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행동보다 기도를 먼저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생명처럼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믿음의 본능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담대하게 왕에게 요청합니다.

  • 성벽을 재건하도록 고향으로 보내 달라는 것
  • 왕의 허락을 받은 조서를 주어 숲 감독 아삽의 나무를 제공받게 해 달라는 것

이 요청들은 매우 대담한 것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정복지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을 매우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은 모든 요청을 허락합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투브 야드, טוֹב יָד)이 나를 도우심으로”(느 2:8).

여기서 ‘선하다’라는 ‘투브’(טוֹב)는 단순히 좋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은혜로운 개입을 의미합니다.
‘손’이라는 단어 ‘야드’(יָד)는 권능과 개입을 의미하며, 구약 전체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즉, 느헤미야는 자신의 능력으로 문을 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먼저 움직였기 때문에 문이 열린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열어 주실 때까지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면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성벽을 살피는 지혜와 은밀한 분별 (느 2:9–16)

느헤미야는 왕으로부터 군대 장관과 마병을 배정받아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느 2:9). 그러나 도착한 그는 곧바로 일을 시작하지 않고, 은밀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조사 작업부터 진행합니다.

그는 밤에 일어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느 2:12),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던 곳을 세심하게 둘러봅니다(느 2:13). 여기서 ‘돌아보다’라는 동사 ‘슈바르’(שָׁבַר)는 단순히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영적 해석을 붙들고 세밀하게 분석한다는 뜻입니다.

느헤미야는 냉정하고 현실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감정만으로는 성벽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감정은 기도의 동기일 수 있지만, 건축의 도구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마음이 아직 사람들에게 드러낼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에는 ‘익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전은 너무 일찍 드러내면 사람들에게 조롱받고 오해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비전을 자연스럽게 공개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심어 주신 꿈과 사명을 사람들에게 너무 일찍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기도 가운데 익히고, 말씀 가운데 다듬고, 하나님께서 열어 주실 때 비로소 꺼내십시오.
비전의 시기와 순서를 결정하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절망 속에 있는 백성을 일으키는 영적 리더십 (느 2:17–18)

느헤미야는 모든 상황을 다 보고 난 뒤, 백성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당한 곤경을 너희도 보고 있느니라”(느 2:17).

‘곤경’이라는 히브리어 ‘라아’(רָעָה)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재난, 수치, 파멸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는 백성의 마음속 절망을 인정하게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느 2:17).

그러고 나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왕의 말도 선하게 임했다고 간증합니다(느 2:18).
그러자 백성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일어나 건축하자”(느 2:18).
여기서 ‘일어나자’라는 동사 ‘쿰’(קוּם)잠든 영혼이 다시 깨어 일어나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회복의 단어입니다.

리더는 사람들을 몰아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손을 증언함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하면 된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돕고 계신다.”

이 한 문장이 백성의 영혼을 깨웠습니다.

반대와 조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 (느 2:19–20)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면 반드시 ‘대적’이 등장합니다. 삼발랏, 도비야, 게셈은 느헤미야와 백성을 조롱했습니다(느 2:19).
조롱의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너희가 반역하려는 것이냐?”

조롱의 목적은 두려움을 심고 사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느 2:20).

여기서 ‘형통하게 하다’라는 ‘찰라흐’(צָלַח)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길을 앞으로 밀어 내시는 강력한 영적 추진력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는 대적과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증언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중심으로 서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람을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추진력, 하나님의 선한 손, 하나님의 개입이 그를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 2장은 ‘회복’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전개되는지를 보여 주는 놀라운 장면입니다.
회복은 기도에서 시작되지만, 그 기도는 반드시 역사 속 현실을 움직이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에게

  • 기다리는 믿음을 주셨고,
  • 담대한 기도의 순간을 주셨고,
  • 분별력 있는 조사와 전략을 주셨고,
  • 사람들의 영혼을 일으킬 리더십을 주셨고,
  • 대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단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를 도우심으로”(느 2:8)

오늘 우리도 이 손 위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사역, 일터와 교회에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