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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해

마가복음 9장 주요 주제와 해설 묵상

by πάροικος 2025.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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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과 고난 사이, 믿음의 길을 걷는 제자들

마가복음 9장은 예수님의 변화 산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그에 따르는 고난의 길, 그리고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장입니다. 산 위에서의 영광스러운 주님과 산 아래 현실의 갈등과 불신, 제자들의 무지함 속에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게 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본장을 통해 깊이 드러납니다.

 

변화산 위에서 드러난 영광의 실체 (막 9:1-1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고 말씀하신 후(막 9:1), 엿새 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화되시는데, 옷이 세상에서 빨아도 그렇게 희지 못할 만큼 빛났다고 기록합니다(막 9:3). 여기에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는 장면은,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이심을 선포하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베드로는 당황한 가운데 장막 셋을 짓자고 제안합니다. 이는 그가 영광의 순간을 지속하고자 했던 인간적 열망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곧 구름이 덮으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막 9:7). 이는 예수님의 신적 권위에 대한 명백한 선포이며, 제자들이 이제는 율법과 선지자가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장면은 단지 환상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예수님이 참된 메시아이심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제자들은 이 영광을 보았지만, 아직 십자가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의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영광의 순간을 붙잡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산 위의 체험보다, 산 아래의 현실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믿음 없는 세대와 싸우는 주님의 은혜 (막 9:14-29)

산 아래로 내려오신 예수님은 한바탕 논쟁 속에 빠져 있는 제자들과 서기관들을 보십니다. 한 아버지가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왔지만, 제자들은 그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막 9:19)라고 탄식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제자들만이 아닌,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권세를 신뢰하지 않는 세대를 향한 책망입니다.

 

귀신 들린 아이는 어릴 적부터 불에도 물에도 자주 던져져 죽을 뻔했으며, 입을 닫고 이를 갈고, 거품을 흘리는 등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도와 주옵소서”라고 간청합니다(막 9:22). 이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고 답하십니다. 이에 아버지는 외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

 

이 고백은 모든 신자의 기도이자 신앙의 실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는 믿지만 여전히 부족하며, 믿음과 의심이 동시에 공존하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연약한 믿음조차도 붙드시며, 귀신을 꾸짖고 아이를 온전히 회복시키십니다. 제자들이 따로 묻자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하십니다. 이는 영적 싸움의 본질이 단순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의존에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능력은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제자됨의 자세, 섬김과 거룩의 길 (막 9:30-50)

예수님은 다시금 제자들에게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십니다(막 9:31).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워 묻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 사이에는 누가 더 큰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집니다(막 9:34). 이는 메시아의 고난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드러난 제자들의 어리석음이자 인간적인 욕망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품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막 9:37). 아이는 당시 사회에서 가치가 낮은 존재였고, 스스로를 주장할 수 없는 자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위대함이란 섬김과 낮아짐 속에 있으며, 가장 작은 자를 품는 것이 주님을 맞이하는 태도라고 가르치십니다.

 

요한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을 보고 그를 막았다고 보고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막 9:40)며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십니다. 이는 사역의 일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틀을 넘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신앙의 넓음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후 예수님은 죄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3). 이는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죄에 대한 철저한 단절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단순한 도덕적 개선이 아니라, 죄와의 철저한 결별을 요구하는 거룩의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막 9:49). 이는 제자의 삶이 정결케 되는 연단과 희생을 거쳐야 함을 의미합니다. 소금은 맛을 내며 부패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 속에서 맛을 내고, 부패하지 않으며, 거룩함을 지켜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막 9:50)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시며, 제자 공동체 내의 겸손과 화해를 강조하십니다.

 

결론

마가복음 9장은 산 위의 영광과 산 아래의 현실, 믿음과 불신, 섬김과 경쟁, 회복과 경고라는 대조 속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광의 주이지만, 십자가의 고난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그분을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기도로 무장하며, 죄를 단절하고, 겸손히 섬기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오늘, 변화산의 영광이 아닌 산 아래의 삶 속에서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영광과 고난 사이, 믿음으로 걷는 그 길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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