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주해/요약설교

느헤미야 13장 1–14절 설교

by πάροικος 2025. 11. 19.
반응형


언약을 수호하는 믿음—거룩을 회복하는 느헤미야의 단호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의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걸음 하나하나를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느헤미야 13장 1절부터 14절은 느헤미야서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본문입니다. 이전까지는 성벽이 회복되고, 예배가 회복되고, 공동체의 기쁨이 충만한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 회복이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시험을 받고, 어떻게 다시금 무너질 뻔하며, 그 지점을 느헤미야가 어떻게 바로 세워나갔는지를 보게 됩니다. 이 본문은 우리의 신앙이 늘 경각심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한순간의 헌신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켜야 하는 거룩의 싸움임을 보여줍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도 느헤미야처럼 깨어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언약의 기준을 다시 읽다—말씀의 재발견(느 13:1–3)

본문은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책을 낭독할 때에”(느 13:1) 새롭게 깨달음을 얻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말씀을 읽는 순간, 그들은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 23:3)가 기록되어 있음을 재발견합니다(느 13:1).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낭독하다’는 히브리어 카라(קָרָא) 입니다.
이 단어는 ‘읽다’라는 의미를 넘어
‘선포하다’, ‘부르다’, ‘영적 현실을 드러내다’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단순한 읽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백성에게 다시 말씀을 ‘부르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서 백성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이스라엘과 섞인 무리를 모두 분리하였느니라”(느 13:3).

‘분리하다’는 바달(בָּדַל) 로,
‘구별하다’,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따로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배타적 차별이 아니라,
거룩(קדש, 카도쉬)의 회복을 위한 구별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은 우리에게 기준을 새롭게 합니다.
말씀 앞에 서면 우리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 분명해집니다.

성전의 타락—도비야가 성전 방에 들어오다(느 13:4–5)

말씀의 기준이 세워진 직후, 매우 충격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제사장 엘리아십이 아모니 사람 도비야에게 성전의 한 방을 내주었다는 것입니다(느 13:4–5).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영적 심각성을 봅니다.

첫째, 도비야는 느헤미야를 집요하게 방해했던 원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백성의 회복을 비웃고 조롱하며 방해했던 사람입니다(느 2:10, 4:3).

둘째, 성전의 방은 거룩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공간입니다.
그 방은 곡물·포도주·기름·십일조·레위인·문지기·노래하는 자들의 것을 두는 곳이었습니다(느 13:5).
즉, 예배 공동체의 중심이 모여야 할 자리가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여기서 ‘방’은 히브리어 리쉬카(לִשְׁכָּה) 로,
성전 안의 특별한 기능을 가진 공간을 뜻합니다.

그 방이
하나님을 반대하던 자에게 내어주었다는 것은
예배 질서 자체가 무너진 사건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전의 무너짐은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타협에서 시작됩니다.
거룩의 자리에는 거룩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공간과 시간을
엉뚱한 것들이 점령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느헤미야의 분노—거룩을 지키는 거룩한 결단(느 13:6–9)

느헤미야는 당시 바사 왕에게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상황이었습니다(느 13:6).
그는 돌아와 이 일을 보고 심히 분노합니다(느 13:8).

여기서 ‘분노하다’는 히브리어 라아(רַע) 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악함을 보고 마음이 들끓다’,
‘거룩을 침해한 것에 대해 의분을 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느헤미야의 분노는 인간적 감정이 아니라
거룩을 지키기 위한 영적 분별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① 도비야의 모든 세간을 방 밖으로 던져내고
②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③ 다시 성전 용도로 회복시킵니다(느 13:9).

‘정결하게 하다’는 타하르(טָהֵר) 로,
앞서 설명한 대로 하나님 앞에서 적합하게 만들다,
거룩을 회복하다라는 뜻입니다.

느헤미야는
“이건 안 됩니다. 이건 거룩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라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이런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영적 타협을 단호하게 끊고,
하나님의 자리를 침범한 것들을 밀어내야 합니다.
믿음은 부드러움만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결단, 구별,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예배 공동체의 붕괴—헌물이 끊어지고 사역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다(느 13:10–14)

느헤미야는 성전 방 문제가 단지 방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 체계 전체를 무너뜨린 사건임을 깨닫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이 끊어진 것입니다(느 13:10).
그래서 레위인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생계를 위해 자기의 밭으로 돌아갔습니다.

즉,
예배가 멈춘 것입니다.

성전 사역자들이 흩어졌다는 것은
예배가 중단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돌아가다’는 바라크(בָרַח) 의 뉘앙스를 가지며,
‘끌려가듯 흩어지다’,
‘자리에서 밀려나 돌아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관리들을 책망하고(느 13:11),
십일조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다시 모으게 합니다.
그리고 관리할 사람들을 다시 임명합니다(느 13:13).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잊지 마옵소서”(느 13:14)

여기서 “기억하사”는 자카르(זָכַר) 로,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일으키는 기억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 제가 거룩을 지키기 위해 드린 수고를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십시오”
라고 간구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는 누군가의 헌신 없이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신앙 공동체는 누군가가 지키고, 붙들고, 세워야 유지됩니다.
느헤미야는 그 일을 위해
자신의 감정이나 평판보다
하나님의 거룩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 13장 1–14절은
회복된 공동체도 시간이 지나면 타협하고 무너질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고,
거룩을 회복하고,
헌신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주요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말씀은 우리의 기준을 다시 세우며, 잘못된 것을 드러내신다.
  2. 거룩의 자리에는 거룩한 것만 있어야 한다.
  3. 신앙의 타락은 외부보다 내부 타협에서 시작된다.
  4. 때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단호함이 필요하다.
  5. 예배는 헌신으로 세워지고, 헌신이 끊어지면 예배도 무너진다.
  6. 하나님은 거룩을 지키려는 자의 수고를 기억하신다(느 13:14).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라는 성전에도
도비야가 들어온 방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외의 것들이 차지한 자리를
지금 이 시간 내어 버리고,
다시 거룩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결단을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삶을 다시 은혜로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반응형

'성경주해 > 요약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헤미야 12:1–26 설교  (0) 2025.11.19
느헤미야 11:1–36 설교  (0) 2025.11.19
느헤미야 12:27–47 설교  (0) 2025.11.19
느헤미야 10:1–39 설교  (0) 2025.11.18
느헤미야 9:23–38 설교  (0) 2025.11.17
느헤미야 9:1–22 설교  (0) 2025.11.17
느헤미야 8:1–18 설교  (0) 2025.11.16
느헤미야 7:5–73 설교  (0) 2025.11.16

댓글